“더이상 미국 패권 인정 못해” 자력구제 나서는 유럽

2021.01.24 05:46:57

- 美 내분 극복도 벅찰 텐데… 글로벌 리더십은 망상
- 중국과 이란에 기존방침 고수? 이미 누그러진 태도 보여
- 유럽, 美中갈등 속 중립방침, 反中 동맹 당연시 말아야
- 러시아 푸틴 정권교체작업 이미 착수했지만 무리일 듯


2021년 1월 19일, 워싱턴 상원 외교위원회 인사청문회에 출석한 토니 블링컨 美 국무장관 지명자. 사진= AFP/알렉스 에델만/게티 이미지
▲ 2021년 1월 19일, 워싱턴 상원 외교위원회 인사청문회에 출석한 토니 블링컨 美 국무장관 지명자. 사진= AFP/알렉스 에델만/게티 이미지

 

드디어 지난 20일, 미국 제 46대 바이든 행정부가 온갖 구설수와 사건사고에도 불구하고 기어코 출범에 성공했다. 그러나 극도로 분열된 미국이 과연 계속해서 세계 패권국가의 위상을 지켜낼 수 있을지를 놓고 전세계가 부정적인 관측들을 쏟아내고 있다.

 

이중에서, 지난 22일 「아시아타임즈(ASIATIMES)」는 전 인도 외교관 출신 M K Bhadrakumar의 “블링컨의 외교 수레는 곤경에 빠질 것(Blinken’s Diplomatic Cart Will Have A Bumpy Ride)”이라는 분석기사를 실어 눈길을 끈다. 내용을 살펴보자.

 

 

상원 외교위원회가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을 인준한 것은 기정사실이다. 이로서 지난 화요일 그가 청문회에서 발표한 성명서는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됐다.

 

블링컨은 벼룩 잡다 초가삼간 다 태우는 짓은 하지 않았다. 말하자면 트럼프 행정부의 對中 외교정책의 행보와는 거리가 있음을 확인했지만, 과거 워싱턴이 움직여온 전통적인 방식에 대해서도 이의를 제기한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그는 <미국 예외주의>[1]라는 자부심을 발휘하지도, 포기하지도 않았다.

 

놀라운 일도 아니다. 바이든이 일할 미국은 오바마 시대와는 몰라볼 정도로 달라졌으며, 더 중요한 것은 지난 4년간 믿을 수 없을 만큼 세상이 변했다는 점이다. 미국 예외주의라는 가치 기반 노선은 피하면서, 대신 블링컨은 "러시아의 유대인 집단학살(Russian pogroms)", 헝가리의 "공산주의 정권", "홀로 코스트의 공포"를 피해 미국으로 건너온 유대인 이민자로서 자신의 혈통적 뿌리를 부각시켰다.  

 

블링컨은 미국이 해외에서 표방하는 것을 국내에서도 본보기로 삼아야 한다는 점을 인정했다. "겸손"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는 "우리 미국이 이끌어주지 않으면" 스스로 체계적으로 정비해 나갈 능력이 없기 때문에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은 "여전히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미국의 주도적 역할을 다른 나라에 뺏겨 "미국의 이익과 가치”가 흔들리든, 아니면 전세계가 온통 (미국의) 아비규환을 답습하든 어떻든 간에 미국이 세계의 리더로 남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 와서 이런 얘기는, 불과 얼마전 국회의사당 폭동(the Capitol Riots)이라는 엄청난 일을 겪은 나라가 떠벌리기에는 좀 과한 허풍이다. 미국이란 나라의 테마는 아비규환(Chaos)의 머리글자 C인 모양이다. 블링컨은 우스꽝스러운 주장을 한 셈이다. 하지만 이는 망상적 사고를 무심코 드러낸 것이기도 하다.

 

좌우간, 블링컨은 "미국식 외교를 부활”시키고, "민족주의가 부상하고, 민주주의가 (미국과 상관없이) 자생적으로 뿌리내리며, 중국 · 러시아 및 다른 전제주의 국가들로부터 견제가 심화되고, 안정적이며 개방적인 국제 시스템에 대해서 그리고 모든 생활상, 특히 사이버 공간을 재편중인 기술혁신에 대해 쌓여가는 위협" 등 현실 과제를 해결해내겠다고 약속했다.

 

블링컨이 러시아를 세 번씩이나 (중국은 두 번, 이란과 북한은 한번씩) 도전적인 관계로 꼽으면서도, "기타 국가들의 동원" 필요성을 언급하긴 했지만, 대서양 건너 동맹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는 점도 흥미롭다.

 

2015년 6월 24일 워싱턴 미 국무부에서 열린 회의에서 류옌둥 당시 중화인민공화국 부총리와 앤서니 블링켄 당시 미 국무부 차관. 사진: AFP/크리스 클레포니스.
▲ 2015년 6월 24일 워싱턴 미 국무부에서 열린 회의에서 류옌둥 당시 중화인민공화국 부총리와 앤서니 블링켄 당시 미 국무부 차관. 사진: AFP/크리스 클레포니스.

 

중국에 대해 누그러진 어조

 

이번 청문회에서 블링컨이 중국에 대해 보여준 비교적 부드러운 어조가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자세한 설명도 덧붙이지 않고, 그는 "우리는 중국을 이길 수 있으며 국민의, 국민에 의한 정부는 국민을 위해 약속을 지켜낼 수 있다는 점을 전세계에 상기시킬 수 있다"고도 했다. 또한 그는 트럼프의 중국 정책을 언급하며, "기본 원칙은 옳았다"면서도 그 방법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전세계 어떤 민족 국가보다도 미국에 가장 중대한 도전을 해오고 있는 것은 중국이라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블링컨은 말했다.

 

블링컨은 홍콩과 신장의 인권 문제를 거론했으며, 국제기구들의 대만에 대한 군사적, 외교적 지원을 지지했다. 그러나 그는 계속해서 중국과의 협력이 나름 타당할 때도 있는 사안이 존재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이란과 관련해서는 이란이 핵무기를 휘두르거나 핵무기의 문턱에 도달하는 것은 훨씬 더 큰 위협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이란과 "더 장기적이고 강력한" 합의를 추구해 나갈 것이며, "다음 단계는 이란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에 달려있다" 면서도 이란 정부와 어떤 관계를 맺을 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란이 핵무기를 획득하지 않겠다는 제안에 동조하고 있다"고 블링컨은 말했다.

 

한편, 블링컨의 청문회에 앞서 이번 주 초 유럽외교관계위원회(the European Council on Foreign Relations: ECFR)의 정책 브리핑이 발표됐는데, 이 영향력 있는 범 유럽 싱크탱크는 유럽의 외교 및 안보 정책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면서 동시에 유럽 전역의 정책결정자, 활동가, 여론주도층에 회의 장소를 제공하기도 한다.

 

이 정책 브리핑에는 11월에서 12월 사이 유럽의 각 수도에서 실시한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몇 가지 놀라운 결론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 유럽인들은 바이든이 대선에서 승리했다는 사실은 기뻐하면서도 그가 미국을 "과거의 탁월한 세계 리더국가로 되돌릴 수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 미국에 대한 유럽의 태도에 "엄청난 변화”가 생겼다.
  • “대부분의 EU 회원국들은 이제 미국의 정치 시스템은 깨졌으며, 자국의 안보를 미국에 의존할 수 없게 됐다고 생각한다.”
  • 유럽 국가들은 "워싱턴이 아닌 베를린을 가장 중요한 파트너로 보고 있다."
  • 유럽인들은 “10년 안에 중국이 미국보다 더 강력해질 것”이라 믿으며 미·중 분쟁에서 "자국은 중립을 유지하기를 바란다."
  • EU는 자체 방어 능력을 개발해야 한다.
  • "범 대서양주의(서유럽-미국의 긴밀한 관계)의 부활을 위한 기회"는 많이 남아 있지만, 바이든 행정부가 “중국에 맞선 유럽의 동맹”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서는 안된다".

 

블링컨의 입장 발표가 "미국 패권의 위기: 유럽인들은 바이든의 미국을 어떻게 바라보나”라는 제목의 ECFR의 정책 브리핑에 얼마나 영향을 받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바이든 국가 안보팀이 어떻게 현실을 직시하고 있는지는 확인해 볼 수 있을 것이다.

 

2017년 3월 17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로이터/조나단 어니스트.
▲ 2017년 3월 17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로이터/조나단 어니스트.

 

미국에 대한 신뢰 상실

 

이 정책 브리핑은 경제 문제에 있어 유럽이 미국에 "더 강경해져야” 한다는 의견이 많은 것은 유럽의 자신감이 부족하다는 신호이며, "대부분이 미국의 세계 정비 능력을 의심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무엇보다도, 유럽인들은 "미국 유권자들이 4년 후 제2의 도널드 트럼프에게 투표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 유럽인들은 "미국의 정치체제가 완전히 혹은 어느 정도 깨졌다고 믿는다." 그리고 바이든이 "기후변화, 중동평화, 중국과의 관계, 유럽 안보와 같은 국제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투자”할 수 있을 정도로 미국의 내부 분열을 봉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지 않는다.  

 

분명, 대서양 동반자 관계는 유럽 안보를 더이상 생존 문제로 여기지 않는다. 또한 향후 수년 동안 독일의, 그리고 유럽의 對美 정책이 늘어나는 중국과의 경제적 유대에 의해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증거도 쌓이고 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최근 EU-중국 투자 협정을 공식 승인했다.

 

결론은 유럽인들은 미국과 러시아 혹은 중국 사이의 분쟁에서 중립을 지키고자 한다는 것이다. 비록 유럽인과 미국인 모두 중국에 대해서는 태도를 경색시키고 있고, 러시아와는 안보문제가 있지만, 장기적 이해관계는 완전히 다르다.

 

이는 미국은 중국을 분리해서 봉쇄하기를 원하는 반면, 유럽은 (무엇보다도 독일은) 중국과 건설적인 관계를 맺으려고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찬가지로 바이든 행정부는 러시아에 대해 강경 노선을 취할 것으로 예상되는 반면, 유럽의 주요 수도들(베를린, 파리, 로마, 빈, 부다페스트 등)은 이견을 해소하고 공통의 관심사를 다루기 위해 러시아와의 협력을 반드시 필요한 것으로 보고 있다.

 

독일은 장기적인 독일-러시아의 전략적 동반자 관계의 토대를 마련하게 될 노르트 스트림 2 가스관 프로젝트에 대한 미국의 제재 위협에 대해 반발해왔다.

 

확실히 바이든 팀은 새로운 범 대서양주의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하지만 말이 쉽지 이를 실행하기는 어렵다. 달리 말하면, 미국은 지금의 국제 환경에서 중국이나 러시아에 대해 공동의 "서방 전략"을 조직해서 시작할 수 없을 것이다.

 

2021년 1월 17일 러시아 야당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와 그의 부인 율리아가 베를린에서 도착하자마자 모스크바 셰레메티예보 공항의 여권 통제 지점으로 걸어가고 있다. 사진= AFP/Kirill Kudryavtsev
▲ 2021년 1월 17일 러시아 야당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와 그의 부인 율리아가 베를린에서 도착하자마자 모스크바 셰레메티예보 공항의 여권 통제 지점으로 걸어가고 있다. 사진= AFP/Kirill Kudryavtsev

 

나발니와 러시아

 

그 결과 생긴 좌절감은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청문회에서 "블라디미르 푸틴이 어떤 사람(러시아 정치 운동가 알렉세이 나발니) 때문에 겁에 질린 듯한 모습은 의외였다"고 한 블링컨의 도를 넘은 코멘트에서도 잘 드러난다.

 

블링컨은 상원 청문회에서 나발니의 체포와 러시아와의 다른 긴장 관계가 "차기 행정부의 아주 중요한 의제"가 될 것이라고 약속했다. 사람들이 나발니가 러시아 사람들을 위한 진정한 국가적 영웅이라고 생각하기를 진짜로 바라는 것 같다!

 

지난 10년 넘게 오바마, 바이든, 힐러리 클린턴의 최측근이었던 블링컨이 푸틴과 러시아에 대해 반감을 갖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인생은 현실이다.

 

2011년 3월 9일 조 바이든 부통령이 러시아 모스크바 외곽의 고리키 다차에서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과 회담을 나누고 있다. 사진=다비드 리네만/백악관 공식 제공
▲ 2011년 3월 9일 조 바이든 부통령이 러시아 모스크바 외곽의 고리키 다차에서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과 회담을 나누고 있다. 사진=다비드 리네만/백악관 공식 제공

 

미국의 정치조직체 내부의 뿌리깊은 병폐는 제도적 특징일 뿐만 아니라 독불장군 식으로 다루지 않는 한 미국내 사회 분열은 더욱 악화될 수도 있다. 게다가 만약 지난 토요일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전 러시아 대통령이 쓴 범상치 않은 옵에드가 어떤 조짐을 보여주는 거라면, 바이든이 그러한 미국의 병폐를 처리하고 나서도 여전히 푸틴과 처칠식의 전쟁을 치르고 지속할 체력은 거의 남아 나지 않게 되리라고 크렘린은 추정하고 있는 것이다.

 

크렘린궁이 메드베데프를 내세웠다는 건 완전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그의 메시지는 적중했다고 보는 것이 무방할 것이다.

 

기억을 되살려 보면, 10년 전인 2011년, 오바마 행정부의 부통령으로서 모스크바를 마지막으로 방문했을 때, 바이든은 푸틴에게 이듬해 열릴 대선에 나서지 말고 대신 메드베데프가 재선될 수 있도록 길을 내주라고 제안함으로써 (바이든의 유명한) 결례를 범했다.

 

물론 푸틴은 바이든의 러시아에 대한 내정 간섭과 크렘린의 카운터파트로 미국이 선호하는 상대는 메드베데프라는 암시를 무시해버렸다.

 

바이든은 나발니가 푸틴의 뒤를 이을 수 있다고 상상함으로써 또 다시 끔찍한 실수를 저지르고 있는 건 아닐까? 윌리엄 번즈 전 모스크바 대사를 CIA 국장으로 임명하기로 한 이례적인 결정은 정권교체 프로젝트가 한창 진행중임을 암시한다. 메드베데프의 옵에드는 바이든이 번즈의 임명을 발표한 직후에 나왔다.

 

의사당에서 푸틴을 비하하는 발언을 할 때, 온순한 매너남으로 알려진 블링컨은 평소와는 달리 경솔했다. 아마 정신적 긴장과 불안이 드러난 것으로 보인다.  확실히 블링컨의 외교 카트 앞에는 험난한 여정이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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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국 예외주의(American exceptionalism): 미국은 다른 나라와 다른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탄생한 국가라는 개념. 외교정책의 실행에 있어 이는 도덕주의 및 이상주의를 실현하는 메시아적인 존재라는 정서와 결합해 미국적 가치를 해외에 강제로 적용하려는 정책 노력과 정당화 도구로 기능.



 ※ 본 기사는 리베르타스 뉴스와의 제휴에 따라 공동 게재합니다.

이주희 dane726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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