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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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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曺國) 수호’ 그들의 내로남불·인지부조화

-‘조국 옹호’ 86지식인들, 국민 절대다수 여론에도 신경 안 써. “우리가 피해자” 인지부조화 현상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는 좌파 문인의 표현에서 드러나는 자기 모멸과 패배의식

-“일베, 뉴라이트, 틀딱” 등 규정부터 하는 좌파들. 상대를 ‘포승줄’로 묶은 다음 결투하자는 태도

지난달 31일 국회에서 장기표 이병철 김형기 주대환 김대호 정진경 조정관 김윤 민경우 최해범 주동식 등 민주화운동가들의 깊은 성찰을 염원하는 시민 일동이 ‘민주화운동 세력의 깊은 성찰과 거듭남이 필요하다’는 주제로 기자회견을 가진 데 이어 같은 주제로 토론회를 가졌습니다. 토론회에서는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장과 필자가 발표했습니다. 이 글은 당시 필자의 발제문입니다. <편집자>

조국 사태를 보면서 3개의 단어가 떠올랐습니다. 내로남불, 인지부조화 그리고 실사구시입니다.


그들만의 ‘내로남불 리그’

대깨문 그리고 86민주화세대 등 조국을 옹호하는 사람들이 가장 극렬하게 반발하는 것이 조국 일가에 대한 이른바 과잉수사입니다. 공지영의 경우 “한가족을 살해했다”는 표현까지 사용했습니다. 조국의 자택을 압수수색할 때는 이른바 짜장면 파문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검찰이 조국 일가족을 오래 수사하는 것은 조국 패밀리 전체가 각종 범죄 혐의에 거미줄처럼 엮여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명재권 판사란 분이 조국의 휴대폰과 계좌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계속 거부하는 것이 수사가 장기화되는 결정적인 이유입니다.

이 사실을 대부분의 언론이 보도해왔고 국민들도 이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스스로 ‘대깨문’이라고 자처하는 86세대들은 조국 일가를 비난해야 할 현상을 180도 뒤집어 검찰을 비난하는 소재로 사용합니다.

짜장면 파문은 아예 팩트 자체가 엉터리라는 게 밝혀졌는데도, 조국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압수수색에 참여했던 여성 검사의 신상을 털고 심지어 그의 외모를 두고 온갖 인신공격과 모욕을 가했습니다.

86세대 운동권 모두가 이런 행위에 동참한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하지만, 공지영과 기타 상당한 지명도를 갖고 있던 86지식인들이 일방적으로 조국을 옹호했던 것은 분명합니다.

검찰의 과잉수사를 거론하자면, 문재인정권 들어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과 변창훈 전 서울고검 검사 등 5명이나 적폐수사를 받다가 자살한 사례들과 비교할 수밖에 없습니다. 과연 조국 일가가 그렇게 심하게 수사를 받았나요? 전혀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그밖에 자살까지 가지는 않았지만 박찬주 전 육군대장이 무혐의로 밝혀진 음해 때문에 상상 초월하는 모욕을 견뎌야 했던 사례도 거론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86세대들은 여기에 대해서 침묵으로 일관했습니다. 

사실 내로남불의 끝판왕은 조만대장경, 조스트라다무스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낸 조국 본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조국이야말로 86세대 지식인의 원형(Archetype)이며, 지금 조국 옹호에 나서는 86세대 지식인들은 말 그대로 조국의 클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서초동 시위에 나선 대깨문들이 “내가 조국이다”고 외치는 것은 그들의 의도와 정반대 측면에서 액면 그대로의 진실을 보여주는 셈입니다.


문제의 출발점, 인지부조화

86세대 지식인들의 이런 내로남불 행태는 어디에서 출발한 것일까요? 저는 그게 좌파 성향 86세대 지식인의 전형적인 인지부조화에 근본 원인이 있다고 봅니다.

조국을 옹호하는 86세대 지식인들의 행태에는 뚜렷한 특징이 있습니다. 그건, 국민의 절대다수가 조국 패밀리의 비리를 확신하고 비난한다는 사실을 별로 개의치 않는다는 점입니다. 이런 현상에 두 가지 인지부조화가 개입하고 있습니다.

첫째, 조국을 비판하는 뉴스는 모두 가짜이고 그런 가짜 뉴스를 믿는 것은 개돼지들일 뿐이니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생각입니다. 이런 시각으로 보자면 조국을 비판하는 여론조사 결과 따위도 모두 조작의 결과입니다. 엄연히 존재하는 현실을 부정하는 일차원적인 인지부조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약간 복잡합니다. 이게 사실 첫 번째 반응을 낳는 근원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건 자신들이 여전히 사회적 소수이자 약자이며 피해자라고 여기는 심리입니다.

이런 심리 때문에 이들은 대다수 언론들 심지어 한겨레나 경향 같은 좌파 언론도 자신들에게 적대적이며 자신들은 끊임없이 악의 세력으로부터 부당하게 탄압받는다고 생각합니다. 자신들이 정의로운 소수이자 선각자요, 시대의 양심이라는 확신의 근거가 이것입니다.

하지만, 86세대는 우리 사회에서 과거 어떤 세대, 어떤 집단도 누려본 적이 없는 절대권력을 누리고 있습니다. 중앙과 지방정부 등 행정력은 말할 것도 없고 재야권력이라고 할 수 있는 언론과 학계, 시민사회단체까지 거의 100% 장악했습니다.

영화 등 대중문화계는 오래 전부터 공공연하게 ‘좌파의 소굴’로 불렸습니다. 이들이 만악의 근원처럼 여기는 재벌기업 등 경제계는 적폐사냥에 몰려 숨을 죽이고 있습니다. 국회만이 미약하게나마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을 뿐입니다.

현실이 이러한데도 86세대는 자신들이 여전히 사회적 소수이며 억울한 피해자라고 여깁니다. 그래서 이들은 거대한 권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목이 마르다’고 생각합니다. 자신들이 더 많은 것을 요구할 수 있고, 요구해야 한다고 확신합니다.

전형적인 인지부조화 현상인데, 문제는 이게 몇몇 소수 사람들의 편향이 아니라 특정 세대 전반에 걸친 현상이며 게다가 그들의 주도로 대한민국 사회 전반을 잠식해 들어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세월호 노란 리본이 대깨문의 상징이 된 것도 우연이 아닙니다. 세월호 사망자들의 비극이 안타깝기는 하지만 그들이 국가나 공동체에 기여한 것은 전혀 없습니다. 그들은 단지 대형 사고의 피해자였다는 이유만으로 이 나라가 길이길이 기리고 모셔야 할 상징이 되었습니다. 사망자들이 어린 학생들이라는 조건도 피해의 순수성을 극대화하는 장치로 사용됐습니다.

공동체에 대한 기여의 성격이나 크기가 아니라, 얼마나 순결한 피해자인가에 따라 보상이 달라져야 한다는 인식이 사회 전반에 강고하게 자리잡았습니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어마어마한 상징 조작인 소녀상 광풍도 거기 포함됩니다. 징용 노동자도 예외가 아닙니다.

페미니즘 열풍도 마찬가지입니다. 극렬 페미니스트들의 논리를 들어보면 출구가 없습니다. 그저 ‘여자라서 억울하다, 여자라서 살해당했다, 여자라서 피해를 본다’의 무한 순환입니다. 이들을 위로하는 유일한 방법은 이들이 더욱 분노와 억울함을 느낄 재료를 공급해주는 것뿐입니다. 그건 문제 해결과 거리가 먼, 아니 해결 자체를 거부하는 방식입니다.

최근 영화도 개봉했습니다만, <82년생 김지영> 같은 작품이야말로 바로 페미니스트들에게 분노와 억울함의 재료로서 쓰이는, 전형적인 사례라고 봅니다.


가치체계의 왜곡과 전도 현상

이것은 하나의 편향이나 신드롬을 넘어 사회의 기본 가치체계를 무너뜨리는 단계로 가고 있습니다. 피해자에 대한 위로의 차원을 넘어 패배나 저열함 심지어 범죄 등에 긍정적인 가치를 부여하는 현상이 대표적입니다.

우리 사회에는 언제부터인가 범죄 피해자보다 가해자의 인권을 더 챙긴다는 얘기가 많습니다. 공지영이 연쇄살인범 유영철에 대해 쓴 글을 보면 마치 순수한 문학청년에 대한 묘사 같습니다. 눈이 되게 예쁘고 교양 있는 서울말씨를 쓰고 그림도 잘 그리고 예술적 재능이 많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런 유영철은 감옥에서 교도관 멱살을 잡고 온갖 갑질 행패를 부린다고 합니다.

이것은 심각한 가치전도 현상입니다. 천안함 사고로 희생된 국군장병보다 세월호 사망자에게 국가가 훨씬 큰 보상을 줬습니다. 북괴의 지뢰 도발로 두 다리를 잃은 국군 중사에게 전상이 아닌 공상 처리로 끝내려 했던 것도 그런 가치전도와 왜곡 현상의 일환이라고 봅니다.

경쟁에서 밀리는 택시 사업자와 기사들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우버나 타다 등 새로운 시대의 서비스를 불법화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국제경쟁력이 없는 농업을 보호하기 위해 거대한 보조금을 지급해 농민들을 준 공무원화하는 것도 마찬가지 현상입니다.

저는 이런 현상들의 근저에 근대화에 대한 저항과 거부, 적응 실패가 자리잡고 있다고 봅니다. 근대화는 사실상 국민국가(nation state)의 성립과 맥을 같이하는데, 한국의 경우 불행히도 식민지 체제를 통해 국민국가가 시작됐다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즉, 식민지 경험이 한국인의 국민적 정체성(nation identity)에 피해받는 자, 억압받는 자, 패배한 자 등의 부정적 이미지를 강하게, 결정적으로 드리우게 했다고 봅니다. 특히 해방 이후 역대 정권이 정치적 목적에서 반일정서를 악용함으로써 이런 현상은 더욱 고질화됐습니다.

이것은 북한과의 체제 경쟁을 의식한 것이기도 했지만, 체제 정통성이라는 이슈에서 결정적으로 대한민국의 발목을 잡았습니다. 국내 반체제 세력에게 정치적 명분을 헌납하고, 북한이 이들 세력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틈을 만들어 줬습니다. 저는 해방 이후 대한민국의 반체제 운동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것이 북한의 대남공작이라고 봅니다.

피해받는 자, 억압 받는 자, 패배한 자라는 국민 정체성이 북한이라는 막장국가, 근대화에 실패한 국가, 조선의 흔적을 강하게 가진 체제에 대한 친연성을 강화했던 것입니다. 이씨조선과 민비 등에 대한 복권 움직임도 이런 요소들과 무관하지 않다고 봅니다. 현실적으로 대한민국이라는 민주공화국에 살면서 정신세계는 이씨조선 또는 김씨조선에 머무는 특이한 인지부조화 현상입니다.

이런 패배의식, 피해의식, 소수자 의식은 좌파 성향 문학작품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신경림의 <농무>에서 나타나는 ‘원통하다’는 정서, 시 <파장(罷場)>의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는 표현에서 드러나는 자기모멸, 김수영의 시 <풀>에서 나타나는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고,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는 패배 지향 정서가 대표적입니다.

오래 전 시인뿐만이 아닙니다. 광화문 교보문고 건물 벽에 올리는 ‘광화문 글판’에 소개되는 시 구절도 그런 게 많습니다.

‘나뭇잎이 벌레 먹어서 예쁘다 남을 먹여가며 살았다는 흔적은 별처럼 아름답다’ (이생진, 벌레 먹은 나뭇잎)–> 벌레 먹어서 예쁘다? 저는 어쩐지 ‘암세포도 생명’이라고 했던 어떤 드라마의 대사가 연상되더군요.

‘구부러진 길이 좋다 들꽃 피고 별도 많이 뜨는 구부러진 길 같은 사람이 좋다’ (이준관, 구부러진 길)–> 반듯한 길에서는 시적 정취가 생기지 않는 건가요? 구부러진 길이라는 게 신작로를 뚫기 전, 바로 조선시대의 길이라는 의미 아니겠습니까?

‘낙엽이 지거든 물어보십시오 사랑은 왜 낮은 곳에 있는지를’ (안도현, 가을엽서)–> 왜 사랑은 낮은 곳에 있어야 하나요? 글쎄요, 저는 잘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제가 다른 나라 문학작품을 많이 아는 건 아니지만, 대중적인 인기를 끄는 작품들이 이렇게 부정적인 정서와 가치관으로 점철된 사례가 또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듣거나 보지 못했습니다.


다시, 실사구시에서 시작하자

조국을 옹호하는 86민주화세대도 자신들이 87체제의 승리자이자 주류라는 사실을 모르지 않습니다. 그들이 자신들과 다른 견해를 보이는 사람들에게 드러내는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태도가 그것을 잘 보여줍니다.

윤석렬 검찰이 대통령을 무시한다는데, 검찰이 그렇게 막강한데 대깨문들은 조국 자택을 압수수색하는 여검사에게는 거리낌없이 조롱과 인신모독을 퍼붓습니다. 이들이 실은 검찰조차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자기들이 더 강한 권력을 쥐고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검찰을 상대로도 그럴진대, 평범한 일반인들에게는 이들이 어떤 태도를 보이겠습니까?

실제로 이번에 설문조사를 하면서 이메일로 폭력적이거나 협박하는 메시지를 꽤 많이 받았습니다. 이른바 민주화를 내세우는 사람들의 실제 심성이 어떤 상태인지를 다시 한번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승리자이자 우월한 위치에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소수 약자 코스프레를 합니다. 그래야 도덕적 정당성을 강변할 수 있고, 좀더 많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자원을 얻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86세대의 내로남불과 인지부조화가 심화된 것은 1990년대 현실 사회주의권의 몰락이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고 봅니다. 과거 운동권의 중심 이념이던 마르크스 레닌주의는 이 세계에 대한 과학적 분석과 실증주의적 접근을 추구했습니다. 하지만, 현실 사회주의가 몰락하면서 좌파 운동권은 ‘과학’을 버리고 낡은 도덕주의와 진영주의만을 유산처럼 고수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현실적 한계와 북한의 영향력이 복합되면서 86세대 특유의, 현실과 괴리된 집단 정서가 고착 강화돼왔다고 봅니다. 원래 현실과 괴리된 이념일수록 교조화되고 폭력적 성향이 강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들이 노무현이나 문재인 등 특정 정치인 개인의 팬덤화하는 것도 그런 특징의 반영입니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이들을 제어할 수 있는 현실 권력과 지적 영향력은 찾기 어렵습니다. 결국 86세대 및 민주화운동 진영 내부에서 성찰과 반성의 움직임이 생겨나기를 기대할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70~80년대 과학적 진보를 지향하는 운동의 출발점이었던 실사구시에서 다시 출발해야 합니다. 좌파 운동권은 현실에 대한 냉정하고 과학적인 이해와 분석을 팽개친 채 허구와 아집의 상아탑을 쌓아왔습니다. 이게 바로 진영논리로 표출됩니다. 그런 이들의 치유와 회복을 위해서는 반성과 성찰이 가장 절실하게 요구되며, 그 핵심은 바로 실사구시일 수밖에 없습니다.

개인적으로 86세대와 대화하면서 이들이 80년대에 비해 무엇이 달라졌나를 생각해본 적이 있습니다. 이들은 설명과 분석, 비판에 앞서 일단 상대를 규정부터 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너는 일베다, 뉴라이트다, 틀딱이다, 배신자다 등이 이들이 즐겨 동원하는 무기들입니다. 상대를 일단 포승줄로 묶은 다음 결투를 하자는 태도입니다. 이것은 토론이 아니라 심문이고, 취조일 뿐입니다.

이런 태도를 벗어나기 위한 출발점이 바로 실사구시의 회복입니다. 한때 사회 진보의 소망을 공유했던 86세대가 이런 작은 변화에서부터 새로 시작할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오늘 이 소박한 발제를 준비한 것은 바로 그런 기대 때문입니다.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기사는 '제3의길'에 게재된 내용을 게재한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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