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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퓰리즘이라는 악마에게서 민주주의 구출하기

- 메디슨,"포퓰리즘은 다수의 파벌(majority faction)"
- 헌법, 포퓰리즘의 폭주에 물리는 재갈
- 정당 정치, 헌법 벗어난 포퓰리즘의 시작
- 여론조사, 선거제 위협하는 또다른 포퓰리즘
- 미국 헌법의 천재성, 정부와 국민 떼어놓기

민주주의의 성지라는 미국에서 인기영합주의라고도 하는 <우파 포퓰리즘>을 등에 업고 요란하게 등극했던 트럼프가, 결국 나라를 완전히 두 동강낸 채 사라졌다. 우리나라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어디까지가 민주주의고 어디서부터 포퓰리즘인지, 명확한 구분이 필요한 시점이다. 미국 정치학계 최고 지성이라는 하비 맨스필드(Harvey Mansfield) 교수에게서 "민주주의와 포퓰리즘(Democracy and populism, 1995)"에 관한 지혜를 구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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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헌법의 성공에 대해서는 자주 언급된다. 그러나 이를 설명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헌법 작성은 어렵지 않다. 따라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진짜 어려운 것은 헌법을 지키게 만드는데 있다고 생각한다. 정부의 힘은 어떻게 제한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엘리트들이 그들의 지위를 남용하는 것을 막을 수 있을까? 이는 일상적인 질문이며, 보편적인 대답은 헌법 자체가 더 많은 민주주의를 허용한다면 거기에 복종하리라는 것이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정권을 잡으면 어떻게 될까? 그것이 불러올 위험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일단 민주주의가 확립되면, 가장 심각한 위험은 외부가 아닌 민주주의 내부에서 제기될 지 모른다. 이것이 바로 미국의 설립자들이 가진 신념이었다. 美 헌법이 성공한 배경은 그것을 만든 이들이 민주주의의 본질로 간주되는 바로 그 위험에 주목한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연방주의 신문(the Federalist Papers)에서 제임스 매디슨은 이를 "다수의 파벌(majority fraction)"이라고 칭했다.

 

미국 제 4대 대통령이자 미 헌법 제정한 건국의 아버지, 제임스 메디슨
▲ 미국 제 4대 대통령이자 미 헌법 제정한 건국의 아버지, 제임스 메디슨

 

헌법을 만들기는 쉽지만, 잘 만들기는 쉽지 않다. 민주주의의 이점을 포착해낸 지지자들이 민주주의로 대체된 수구정권에 맞서서 결국 민주주의가 옳았다고 항변하기는 쉽다. 그러나 민주주의자들이 민주주의의 해악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을 뿐더러, 발견했다 하더라도 그에 대처한다는 것이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가장 어려운 것은 민주주의의 병폐에 대해 민주적 해결방안을 찾는 것이다. 건국의 아버지들이 헌법을 위해 해낸 일이 바로 이것이며 그 점이 미국 헌법이 성공한 이유라고 믿는다. 미국 헌법은 그 자체가 성공의 주요 원천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정부와 국민 모두가 헌법에 부합하는 행동을 하도록 독려함으로써 헌법 자체에 대한 지지를 창출하고 지속해 왔다.

 

매디슨이 <다수의 파벌> 이라고 했던 것은 오늘날 포퓰리즘으로 알려져 있다. <인기에 영합하는(Populist)>과 <인기있는(popular)> 이라는 단어는 서로 바꿔서 사용되기 일쑤지만, 그 둘은 근본적으로 다른 개념이다. <인기있는> 것은 국민이 원하는 바지만, <포퓰리즘>은 헌법 테두리 바깥의 우발적 혹은 위험한 수단을 통해서라도 국민에게 그들이 원하는 바를 주는 것이다.

 

포퓰리즘은, 물론, 미국 정치에서 전혀 새로운 것도 아니며 그 형태도 각각이다. 포퓰리스트로 불린 첫 번째 집단은 100년 전 주로 농촌운동에서 일어났는데, 도시, 기업, 식자(識者)층을 겨냥해 이들에 대한 저항이 목적이었다. 얼마 안가 이들은 총선거와 예비선거 등의 포퓰리즘 수단을 도입한 진보주의 운동에 흡수되었다. 게다가 이러한 선거를 통해서 국민들은 입법부나 정당조직을 우회하고도 자신들의 뜻을 관철시키게 됐다. 지금이야 헌법이 보장하지는 않아도 확립된 정치체제의 일부라고 여겨지지만, 정당 자체도 과거 한때는(토마스 제퍼슨이 1800년 선거 승리를 위해 민주당을 처음 조직했을 때) 헌법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한 포퓰리즘 수단에 불과했다.

 

1960년대 후반의 시민운동가들은 "국민에게 권력을" 돌리라고 요구하며 기득권층을 들들 볶던 지식인 포퓰리스트였다. "좌파 포퓰리스트"로 불릴 수도 있겠다. 그러나 현재 미국에서 포퓰리즘은 세금 삭감과 임기 제한 관련 국민투표 및 학교에서 기도를 올리는 것과 균형 예산 개헌안을 주장하는 보수주의자들에 의해 점령당했다. 상당수 보수적 포퓰리즘은 대법원에 의한 사법 적극주의(Judicial activism: 법률제정 時 헌법을 자구 그대로 따를 필요가 없다는 사상)를 겨냥한다. 사법 적극주의는 그 자체가 포퓰리즘의 한 형태다. 이는 정부의 타 부문에 진전이 없는 것에 불만을 가질 때 헌법 하부기관에 의해 이루어진다. 헌법에 대한 법률 해석인 척하고 있지만 이는 위헌이다.

 

상당수 보수 포퓰리즘은 사법 적극주의(Judicial activism: 법률제정 時 헌법을 자구 그대로 따를 필요가 없다는 사상)를 저격한다.&nbsp;<strong>헌법에 대한 법률 해석인 척하고 있지만 이는 위헌이다.</strong>&nbsp;
▲ 상당수 보수 포퓰리즘은 사법 적극주의(Judicial activism: 법률제정 時 헌법을 자구 그대로 따를 필요가 없다는 사상)를 저격한다. 헌법에 대한 법률 해석인 척하고 있지만 이는 위헌이다. 

 

또 다른 형태의 포퓰리즘은 정치 외부로부터 나온다 – 미디어의 신기술로부터 말이다. 언론의 자유는 국민과 정부간의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하지만, 국민들이 읽고 생각할 것도 요구한다. 라디오는 언론(신문)보다는 (대중과) 더 친숙하다; 텔레비전은 더더욱 그렇다. 텔레비전은 정보는 더 적게 전달하며 더 많은 오락거리를 제공한다. 시청자들로 하여금 지루함을 참을 수 없게 만들고, 그들을 지루하게 만들까 봐 두려워한다; 전반적으로 사람들은 민주 시민으로서 역량이 떨어졌다.

 

여론조사는 또다른 정치 외적인 형태의 포퓰리즘이다. 여론조사는 원래 사람들이 선거에서 어떻게 투표할지 예측하기 위한 것일 뿐이었다. 이제 이 여론조사 때문에 선거는 설 자리를 잃고 있다. 왜냐하면 누구를 뽑든지 상관없이 국민이 원하는 것을 더 빨리 보여주기 때문이다. 선거처럼 누구에게 정부를 맡길지, 무슨 목적인지 묻는 대신, 여론조사는 그 순간 국민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묻는 경우가 많다. 여론조사는 그들이 매 순간 얼마나 인기가 있는지, 혹은 얼마나 인기가 없는지 알려주기 때문에, 정부는 점점 더 여론의 변덕에 휘둘리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정부는 대중성을 정책과 혼동하기 시작한다.

 

마구잡이식 포퓰리즘의 수단은 선거에서 국민이 원하는 바를 등록하는 헌법적 방법과 구별된다. 다양한 형태의 포퓰리즘이 갖는 공통점은 평범한 방법에 싫증이 나서 새로운 것을 시도할 준비가 된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조바심이다. 의심할 여지 없이 그러한 포퓰리즘은 미국 민주주의, 심지어 모든 현대 민주주의에 밀어붙이는 고유의 힘을 과시한다. 알렉시스 드 토크빌이 우리에게 상기시켰듯이, 우리의 민주주의는 끊임없이 민주화의 과정에 있다. 인기에 영합하는 분위기에서 민주주의는 헌법의 형식과 제도를 국민과 정부 사이의 장벽으로 간주하며 이를 느긋하게 참아내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정부가 대중의 뜻에 더 신속하고 확실하게 반응하기를 원하는 것이다.

 

포퓰리즘과 입헌 민주주의의 차이는 매디슨이 끌어낸 민주정과 공화정의 구별과 일치한다. 매디슨이 말하는 민주정은 "순수 민주주의" 즉, 국민들이 그들의 대표를 통해서가 아니라 직접 통치하는 국가라고 할 수 있다. 매디슨 (및 다른 건국자들)은 그런 정치체제는 현대 국가가 아닌 작은 도시에만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역사적 연구를 근거로, 매디슨은 그러한 민주정은 정치 선동가들에게 취약하며 무정부상태에서 폭정으로 바뀌는 대격변이 특징이라고 결론 내렸다. "순수" 민주주의의 결점에 굴복하지 않을 새로운 형태의 공화국이 필요했다. 그래서 건국의 아버지들은 이전 공화정들에 대한 비판적이고 자기 성찰적인 식견을 체득한 다음, 헌법을 제정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단순히 민주주의 체제를 채택함으로써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 믿지 않았다. 그들의 지혜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를 위한 길잡이다. 포퓰리즘의 위협은 국민정부를 약화시키는 질긴 악마이기 때문이다.

 

<strong>국민들이 대표를 통해서가 아니라 직접 통치하는 국가인 순수 민주정에서 포퓰리즘의 위협은 국민정부를 약화시키는 질긴 악마이다.</strong>
▲ 국민들이 대표를 통해서가 아니라 직접 통치하는 국가인 순수 민주정에서 포퓰리즘의 위협은 국민정부를 약화시키는 질긴 악마이다.

 

 

정부와 국민 사이의 헌법적 연결은 선거에 의해 형성된다. 우리는 선거의 중요성을 감소시키는 어떤 형태의 비선출직 대표든지 경계해야 한다. 그리고 선거는 정부와 국민들을 연결시켜 주기도 하지만 그 둘 사이에 공간을 남겨두기도 한다. 그것이 바로 선거의 핵심 덕목이다. 결코 결점이 아니다. 정치인들은 헌법적 또는 법률적으로 정의된 권한을 갖고 제한된 임기동안 공직에 오르게 된다. 그러한 권한은 그들이 임기동안 기록을 세울 수 있도록 다음 선거까지 활동할 수 있는 범위를 제공한다. 행정부 구성원(내각)들은 두 가지 매우 다른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즉, 비상 시 신속하게 대응하고 장기적인 계획을 수행할 수 있다. 첫 번째 경우, 공직자는 일시적으로 인기가 없다는 사실에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두 번째 경우, 그들은 대중에 의견을 구해가며 천천히 일할 수 있다.

 

입법부 구성원들(국회의원)은, 변하는 여론을 좀더 많이 반영할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원실(과 복잡한 위원회 네트워크를 통해) 단독으로 그리고 다른 이들과 더불어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심사숙고할 기회를 갖게 된다. 이것이 매디슨이 말한 "냉철하고 신중한 공동체 의식"이 작동하는 방법이다. "신중한(deliberate)"이란 단어는 <느리다>라는 뜻과, <조심스럽고 합리적>이라는 의미를 동시에 갖는다. 사람들이 서두를 때, 그들의 이성은 대체로 잘 작동하지 않는다. 잘 만들어진 헌법이 있으면, 민주정의 국민들은 자신들의 변덕스러운 성향을 억제하고, 행동으로 옮기려는 충동적인 욕구를 제어할 수 있다. 민주주의가 행해지는 곳은 어디나 그러한 압력을 특징으로 한다; 특정 인종, 문화, 기질에 따라 유별나게 다르지 않다. 헌법이 정통성을 보장한 정부가 해야 할 책무는 그러한 압력을 제한하거나 지지하지 않고 신중히 대처하는 것이다.

 

헌법적 공간이 국민에게 주는 이점은 정부로부터 확실하게 떨어져 있는 것이다; 이 공간 덕분에 국민들은 정부를 심판할 수 있다. 만약 정부가 대중의 뜻에 너무 충실하게 반응하면, 정부와 너무 가까워서 국민은 제대로 평가하기 힘들어진다. 국민의 정부가 되는 대신, 정부가 곧 국민이라, 자기자신 말고는 아무도 비난해줄 사람이 없다. 정치인에 대한 일반적 불신임은 민주주의에 건전성을 담보할 수 있지만, 그것은 또한 책임회피일 수도 있다. 민주 정부는 정직한 헌법적 공간 만큼이나 책임 있는 시민을 필요로 한다. 바로 이점이 미국 민주주의의 천재성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국민 정부가 필요할 때 인기 없는 일을 할 수 있게 하는 동시에 적절한 시기에 국민의 심판을 제공할 수 있게 한다. 헌법상의 거리는 민주주의의 병폐에 대한 민주적 구제책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민주적인 국민으로부터 최상의 것을 뽑아 내기 때문이다; 즉 최고의 지도자를 뽑고 그들에 대해 최고의 집단적 판단을 내릴 수 있게 하는 것이다. 헌법상의 공간이 정부에게 있어 성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최상의 기회를 제공한다.

 

포퓰리즘이, 대중성을 위한 온갖 장치를 갖췄다고 해서, 민주 정부를 더 인기 있게 만든 것도 아니다. 반대로 포퓰리즘은 정부를 소심하고 국민을 조급하게 만들어 민주적 정당성을 훼손한다. 민주주의를 더 민주적으로 만드는 것이 항상 잘못되었다는 뜻은 아니다. (위에서 본 것처럼 정당들은 입헌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포퓰리즘적이고 비헌법적인 수단이었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포퓰리즘의 유혹으로부터 스스로를 구하기 위한 헌법이 필요하다. 헌법의 목적은 국민의 뜻을 거스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이행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 저자 하비 맨스필드(Harvey Mansfield)는 하버드대 윌리엄 R. 케넌 주니어 행정학과 교수다. 그는 현재 뉴잉글랜드 정치학회 회장을 맡고 있으며, 국립인문학기금의 자문 위원회 회원이기도 하다. 저서로는 미국 헌법의 영혼; 위정자 길들이기; 현대 행정 권력의 양면성; 마키아벨리의 피렌체 역사, 그리고 마키아벨리의 위정자의 새로운 번역 등이 있다.


※ 본 칼럼은 리베르타스와 협의에 의해 공동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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