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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미계 스파이들, 과연 믿을 수 있나?

- 기밀이 정계,언론에 넘어간다? 정책 바뀐다는 뜻
- 완벽하게 객관적인 첩보란 없어, 인지편향에 교란당해
- 기밀유출, 정치적 선전선동 위해 써먹는 계략으로 전락
- 이념에 사로잡힌 결정권자들과 미디어가 가짜 첩보 양산
- 궁극적으로 정부 불신으로 이어질 수도

과연 영국과 미국으로 대변되는 "서구 국가들의 기밀 폭로, 과연 믿을 수 있는가(Can we trust our spies?)" 하는 의혹이 전직 영국 첩보원으로부터 나와 눈길을 끈다. 


지난 5일(현지시간) 러시아 국제보도 전문채널 RT(Russia Today)는 오타와 대학에서 러시아 역사 및 군사윤리를 가르치고 있는 전직 영국 정보장교 출신 폴 로빈슨 교수의 흥미로운 칼럼을 게재했다. 


그는 현재 영국과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첩보시스템의 실패가 심히 우려스러운 지경이며, 러시아를 상대로 한 첩보 폭로전이 얼마나 사악하고 얼빠진 짓인지 신랄하게 성토하고 있다. 그의 얘기를 들어보자. 




정치권이나 언론으로 기밀이 넘어간다는 건 정책이 바뀐다는 뜻이다. 하지만 최근 러시아에 쏟아진 비난처럼, 현재 써먹고 있는 기밀유출전략은 선전선동이 목적이다. 당장의 정치적 목적이 무엇이든 간에, 이 방법을 잘못 써먹다간 공공기관에 대한 신뢰를 약화시킬 수 있다.


내가 복무했던 영국 육군 정보부대는 'Manui dat cognitio vires(아는 것이 힘이다)'를 모토로 움직인다. 원리는 명확하다. <제대로 알수록, 강해진다> 정확한 정보를 통해 바람직한 의사결정이 내려지고, 수중에 들어온 연장을 더 날카롭게 사용하는 법이다. 적어도 이론상으로는 말이다.


이 논리는 국가가 정보 수집과 분석에 막대한 자원을 투자하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그러나 이것이 정말로 더 나은 의사결정을 도출하는지에는 논쟁의 여지가 있다. 미국에서 나온 연구들은, 첩보가 애초에 의사결정에 도움을 주기보다는 이미 내려진 결정을 정당화하는 경향이 있다고 결론 내리고 있다. 이 주제에 관한 어떤 책에서 전 영국 합동정보위원회(JIC) 수장인 마이클 허먼은, 비록 첩보가 정책 시행 방식에는 꽤 영향을 미쳤지만, 정책 자체에 끼친 영향은 아주 미미했을 뿐이라고 결론지었다. 요는, (결정권 가진) 인간들은 지들이 하고 싶은 짓을 거리낌없이 해대지만, 그 방법은 계속 바뀐다는 얘기다.


그중 하나는 현재 서구 국가들이 러시아에 대해 취하고 있는 강경노선과 연관지을 수 있다. 이론상, 이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태세를 갖추고 있음을 보여주는 첩보의 결과물이다. 그러나 실상, 강경파는 첩보로 밝혀지기 훨씬 전부터 존재했다. 이 외에도, 그러한 위협에 직면했을 때 구사해 볼 수 있는 정책 옵션은 여러 개가 있다. NATO가 다른 어떤 것도 아닌, 러시아를 '저지(deter)'시키는 옵션을 골랐다는 사실은 첩보와 그닥 관련이 없다; 단지 수십년간 하던 짓을 되풀이했을 뿐이다.


여하한 경우라도, 첩보란 절대로 온전히 객관적이지 않다. 수집하고자 하는 정보, 전달자의 신빙성, 정보의 해석 방식은 필연적으로 기존의 선입견에 의해 채색된다. CIA 분석가인 리차드 J. 호이어는 저서 "첩보 분석의 심리학(The Psychology of Intelligence Analysis)"에서, <인지편향은 첩보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교란시킨다>고 지적했다.


이 모두가 최근 러시아와 관련해 미국과 영국에서 흘러나오는 일련의 첩보 폭로를 설명하는데 어느 정도 도움이 된다. 이 중 많은 부분이 맹신을 확산시키고 선전선동의 낌새를 풍기고 있다. 전부다 사기꾼들이  지어낸 소설이라 쉽게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첩보는 기존의 선호를 공고히 할 만큼 결정적으로 왜곡된 결과를 만들어내서 기존의 정책 선호를 부추기는 데 사용되는 <완고한 이념이라는 렌즈>를 통해 수집되고 분석될 가능성이 높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이번 주에 나온, 돈바스 주민에 대한 우크라이나 육군의 가짜 공격을 보여주는 '위장술책' 영상을 러시아에서 제작할 계획이라는 미국 정부의 주장이다. 이 따위 의혹으로 우크라이나 침공의 빌미를 만들어내겠다는 발상이다. 


이 의혹이 지닌 문제는 미국 정부가 이를 뒷받침할 만한 증거를 내놓지 못했고, 문제의 동영상이 만들어지지도 않은, '기획'된 것일 뿐이라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없다는 점이다. 미국의 말만 믿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 미국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 대해 형편없이 정확도가 떨어지는 주장을 펼쳤던 전적이 있다.  2014년 초 미 국무부에서, 반군이 통제하는 돈바스에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러시아 병사들의 사진을 공개했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들은 과거 그루지야에서 촬영된 러시아 특수부대로 확인됐다.  미 국무부로서는 재수없게도, 개별 연구자들(네티즌)이 문제의 인물들의 신원을 특정해서 사실은 그들이 러시아 군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데 불과 몇 시간도 안 걸렸다. '가짜 뉴스'였다.


현재시점으로 잽싸게 돌아오면, 똑같이 의심스러운 다른 주장들이 보인다. 여기에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쿠데타를 모의하고 있다는 영국 정보기관의 주장도 포함되어 있다. 목표는 러시아 연방에서조차 제재를 받는, 대중적 지지가 거의 없거나 전무한 꼭두각시 대통령을 세우는 것이었다. 이 음모는 도무지 말도 안되는 얘기라 우크라이나 문제 전문가들에 의해 조롱을 받았다.


이후 러시아 육군에서 혈액 공급처를 우크라이나 국경 부근으로 옮겼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이는 군사 작전이 임박했다는 확실한 징후가 됐다. 그러나 한나 말라 우크라이나 국방부 차관은 "우리 사회에 공포와 혼란을 조성하기 위한" 도발행위라고 비난했다.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말라 차관은 우크라이나 정보국에 확인한 결과, "우리는 이를 뒷받침할 정보를 찾지 못했고, 혈액 공급품이 전방으로 이동하지도 심지어 전방 주변의 민간 병원에서도 발견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본론으로 돌아가서, 이론상 첩보의 목적은 의사결정을 개선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 이러한 사례들을 보면, 광범위한 변수들이 이미 확정된 정책들을 정당화하기 위해 첩보가 사용되고 있는 현실이 나타난다. 즉, 첩보가 정책 개선이 아니라 기존의 정치적 목적을 지지하는 정보전의 도구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사람들이 그것을 깨닫게 될지>이다.


이렇게 회의적인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권위에 대한 자연스러운 존중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많은 기자들이 정보기관의 이념적 관점을 공유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사실 또한 그렇다. 게다가 이러한 의혹의 대다수가 사실임을 증명하기도 힘들지만, 거짓임을 입증하는 것 또한 매우 어렵다. 예측이 사실로 드러나지 않으면, 이는 항상 의혹을 제시하는 바람에 상대가 행동을 수정했을 수밖에 없지 않겠냐는 말로 핑계를 댈 수 있다. <임박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다. 모두에게 알려지는 바람에 러시아인들이 물러섰기 때문이다!  끝내 <위장전술용 동영상>은 나오지 않았다. 일단 언론에서 까발리면 러시아로선 그 계획을 포기해야 하니까 말이다. 그런 논리에는 뭘로도 이길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터무니없고, 입증할 수 없는, 때로는 명백한 거짓 주장이 지닌 폭력성은 신뢰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 수없이 많은 첩보 폭로가 아무리 나빠봤자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될 뿐이며, 기껏해야 아무 물증도 없이 개돼지나 믿을법한 완전히 입증불가능한 것으로 밝혀진다. 공공기관에 대한 신뢰도가 추락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이는 문제의 극히 일부일 수도 있다. 첩보를 선전 도구로 사용하는 것은, 단기적으로는 당장 정치적 목적에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대한민국의 국정원 상황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과연 우리는 이런 경우 정보선진국들의 꼼수에 말려들지 않을 만큼 실력이 있을까? 러시아는 엄혹한 냉전시대 KGB라는 막강한 첩보기관으로 무장된 나라다. 그런 나라도 영국과 미국의 장난질에 번번이 놀아난다.  총부리를 겨누고 있는 북한을 상대로 그까짓 댓글 몇개 달았다고 국정원 수장부터 말단 여직원에 이르기까지 죽일 듯 닥달하며 감옥에 쳐넣는 이 나라가 진정한 첩보전과 가짜 폭로전에 대응할 정신 자세나 갖추고 있는지 자못 회의스럽다.


심지어 그 말도 안되는 수사의 책임자였던 자가 이 나라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섰다!  유구무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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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근의 국제정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