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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방위산업의역사(방산백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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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위산업의 태동과 자주국방(9), 최초의 방위사업: 번개사업

방산백서 제1부(9), Chapter 2 '방위산업의 태동과 자주국방'




방산전문 매체 '글로벌디펜스뉴스'는 '한국방위산업학회(회장 채우석)'가 지난 2년간 집필한 '방위산업 40년, 끝없는 도전의 역사' (이하 '방산백서')를 전 국민들에게 널리 보급하여 방위산업에 대한 오해를 불식시키고자 연재하기로 하였습니다. 아래의 전문은 '방위산업 40년, 끝없는 도전의 역사' (이하 '방산백서')의 원문이며, 한국방위산업학회의 동의 하에 게재하는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자주국방을 위해 방산제품 개발에 참여한 민·관····연 관계자와 방산제품 시험 도중 부상 당하거나 순직하신 모든 분들께 격려와 위로의 박수를 보내 주시기 바랍니다.



                                           <제1부 요약>

제1부에서는 우리나라 방위산업의 태동부터 현재의 방위산업에 이르기까지 방위산업과 관련된 주요사건과 이슈 중심으로 정리했다. 우리나라 방위산업은 1960년대 말부터 있었던 북한의 지속적인 도발과 주한미군 철수 등 한반도 안보환경의 불안정을 극복하고 자주국방을 실현하려는 의지와 열정에서 비롯되었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박정희 대통령은 국방과학연구소(ADD)를 창설하고 이어 한국의 최초 방위사업이라 할 수 있는 번개사업과 1차 율곡사업을 시작하여 짧은 기간에 미사일까지 개발하는 성과를 이루었다. 우리나라 경제성장의 기반이 된 중화학공업은 곧 방위산업을 위해 육성되었고 방위산업과 함께 발전했다.

박정희 대통령의 서거와 함께 미사일 개발이 중단되고 국방과학연구소가 축소되는 등 시련의 과정이 있었으나, 2・3차 율곡사업을 통해 방위산업의 기반이 다져지고, 한국형 정밀무기 개발에 대한 도전은 계속되었다. 율곡감사는 방위사업의 투명성을 확보하는 계기가 되었고, 각 정부별로 이루어진 국방개혁과 획득제도 개선 및 방위력개선사업을 통해 방위산업은 내실을 다지면서 첨단화를 지향해왔다. 2006년 방위사업청의 설립으로 방위산업은 개방과 경쟁의 장(場)으로 진입하는 변혁을 겪게 되었고 국제경쟁력 강화를 모색하는 과정에 있다.





Chapter 2 방위산업의 태동과 자주국방

9. 최초의 방위사업: 번개사업


박정희 대통령은 1971년 11월 9일 경제기획원에서 방위산업 건설(4대 핵공장 건설)의 추진 현황을 보고받은 그날 김정렴 비서실장을 통해서 국방부 장관과 국방과학연구소 소장에게 즉시 국산 병기 개발에 착수할 것을 지시했다. 그것도 연내에 시제품을 만들라는 지시였다. 그리고는 그 다음날인 11월 10일 오원철 차관보를 경제제2비서실 수석비서관에 임명하고는 다음과 같이 지시를 내렸다. 

“첫째, 안보 상황이 초비상 상태이다. 둘째, 우선 예비군 20개 사단을 경장비 사단으로 무장시키는 데 필요한 무기를 개발하고 생산하라. 60mm 박격포까지를 포함한다. 셋째, 청와대 안에 설계실부터 만들어 직접 감독하라. 나도 수시로 가보겠다. 처음 나오는 병기는 총구가 갈라져도 좋으니 우선 시제품부터 만들라. 차차 개량해나가면 쓸 만한 병기를 생산할 수 있게 된다. 필요한 우수한 인재를 동원하라.”

오 수석은 “완전히 군대식 명령 하달이었다. 나는 직립 부동자세에서 하마터면 과거 군대생활이 되살아나 거수경례를 할 뻔했다. 다시 군대에 입대한 기분이 들었다”고 했다. 이에 따라 즉시 경제제2수석비서관실에서 근무할 인원을 편성하고는(제1부2장 1절 ‘방위산업을 향한 첫발’ 참조) 병기개발 계획을 수립하고 기본방침을 설정했다.




우선 착수할 과제는 소총, 기관총, 박격포, 3.5인치 로켓발사기, 지뢰, 수류탄 등 기본병기를 중심으로 하고, 모델명과 시제품 수량을 정했다. 그리고 1차 시제품을 12월 30일까지 제작하고, 1차 시제품에 대한 시험 후에 결함을 보완하여 2차 시제품을 이듬해 1972년 3월 1일까지 제작하도록 기한을 정했다. 

사업명을 “번개사업”이라 했는데, 실제로 번개처럼 빨리 만들어야 했다. 국방과학연구소는 즉시 기구를 개편하여 제1실(총포), 제2실(탄약), 제3실(로켓), 제4실(통신전자), 제5실(기동장비), 제6실(장구 및 물자)의 6개실로 체제를 정비하고 11월 17일부터 개발 작업에 착수했다. 이 6개실 중에서 소총과 박격포를 맡은 제1실이 가장 바빴다.

그리고 3.5인치 로켓포를 맡은 제3실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청계천 시장은 없는 것이 없는 곳이었다. 미군에서 불하되거나 절취한 각종 공구와 장비들이나 심지어 기술교범까지 거래되고 있었다. 그리고 일본식의 마치코바(町工場) 같은 작은 철공소도 있었다. 국방과학연구소 직원들은 부리나케 청계천을 드나들었다. 병기의 도면이 없으니 분해해서 부품의 실물을 스케치하여 역설계로 만들 수밖에 없었다. 

수도경비사령부에서 필요한 병기를 빌려왔다. 그리고 소재를 구할 수 없어서 비슷한 것으로 우선 모양만이라도 만들었다. 로켓발사기도 창틀을 만드는 알루미늄 주물로 제작했다. 물론 형체는 갖출 수 있었으나 강도는 현저히 떨어져 시사(試射)하기가 불안했다. 박 대통령으로부터 병기 시제품 긴급개발 지시(번개사업)를 받은 1주일 뒤인 1971년 11월 17일부터 국방과학연구소는 24시간 쉬지 않고 일하며 한 달 만에 소총과 박격포를 만들어냈다. 

이렇게 서둘러 만든 국산 병기의 1차 시제품 8종이 마침내 12월 16일 청와대 대접견실에서 처음으로 공개되었다. 빨간 카펫이 깔려 있는 청와대 대접견실에 대한민국 유사 이래 초유의 각종 국내 개발 병기가 진열된 것이다. M1소총, 카빈 소총, 기관총, 60mm 박격포, 81mm 박격포, 3.5인치 로켓발사기, 대인지뢰(크레모아), 대전차지뢰 등 7종이었다(<표 1-1> 참조).






새로 칠한 국방색 병기는 병기라기보다는 예술품이었다. 참석자들은 국산화한 미제 구식 병기를 보고 모두 감개무량해 했다. 박 대통령은 환히 웃으며 자랑스럽다는듯이 “우리가 만들어낸 병기들이야”라고 했다. 연구진의 노고를 치하하면서 “금년도 최고의 크리스마스 선물이다. 우리도 마음만 먹으면 해낼 수 있어. 우리도 이제는 이런 정도로는 발전된 거야”라고 하며 기뻐했다. 우리 손으로 만든 최초의 국산 무기들이었다.

사실 북한은 6・25전쟁 전부터 총기를 생산하고 있었다. 1971년에는 이미 소련제 자동소총인 AK-47을 자체생산하고 있었으며 저격용 장총을 비롯하여 각종 야포도 생산하고 있어 방위산업 면에서는 북한이 우리나라에 비해 절대적 우세에 있었다. 1971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전날에 해운대 탄약창 사격장에서 3.5인치 로켓포를 시험사격했는데, 차출된 병사와 시제품을 만든 국방과학연구소 요원들이 차례로 사격을 실시한 결과 대성공이었다. 카빈 소총은 태릉 육군사격장에서 육군 사격선수들을 동원해서 쏘아본 결과 명중률이 미제보다 더 좋게 나왔다. 수류탄과 지뢰 등 기타 장비도 모두 성능에 이상이 없었다.

1차 시제품 개발에 이어서 국방과학연구소 개발팀들은 그해 크리스마스는 물론 이듬해 설날 연휴까지 반납한 채 연구실 불을 밝히면서 2차 시제품 개발에 착수했다. 이것을 2차 번개사업이라고 하는데, 2차 번개사업은 1차와 기본적으로 품목은 같았으나 1차 시제품의 불량부품을 수정・보완하는 데 중점을 두면서 수량을 늘리고, 66mm 신형 로켓발사기, 유탄발사기 및 개인 장구류를 포함하여 몇 가지 시제품을 추가하기로 했다.

당시 우리나라는 무기개발의 기초인 금속, 기계, 전기, 전자, 화공학 등 관련 산업기반이 아무것도 없었다. 더욱이 책정된 연구개발비도 970만 원(현재 가치로 2억여원)에 불과해 개발 과정은 가시밭길 그 자체였다. 당시 미국 국무부는 우리나라 무기개발에 대해 견제가 심했지만, 미국 국방부의 주장으로 한국이 이미 구식이 된 소화기(小火器)를 제조하는 것에 대해 양해하고 1972년 1월 7일 하딘팀[클라이드 하딘(Clyde D. Hardin)을 단장으로 하는 기술지원단]을 파견하여 국방과학연구소를 도왔다. (제1부 1장 8절 ‘하딘팀의 기술지원’ 참조). 

이로써 2차 번개사업 시제작업 때에는 하딘팀으로부터 각 병기에 대한 도면 및 기술자료 지원뿐 아니라 시제품 기술시험평가 지원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미국의 군사규격에 따라 우선 박격포 개발부터 시작했다. 이번에는 청계천에서 제작한 것이 아니라 당시 한국에서 가장 규모가 큰 기계공장 2개소에서 나누어 제작했다. 제작된 시제품으로 2월 23일부터 3월 15일까지 3차례에 걸쳐 시험사격을 실시했다. 1972년 4월 3일에는 박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육군 보병 26사단에서 국방과학연구소가 개발한 기본병기 2차 시제품에 대한 종합시험사격이 성공적으로 실시되었다.







당초 4년 걸릴 것으로 예상되었던 권총 개발도 개발 기간을 10분의 1 이하로 단축하여 4월에 완성되었다. 이로써 예비군 20개 사단의 경보병사단화라는 목표는 우리 손으로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3차 번개사업은 병기의 대량생산이 가능한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4월 1일부터 6월 말까지 수행했고, 9월에는 시제품을 보완하는 작업을 마무리했다. 번개사업이라는 이름처럼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우리나라 방위산업은 이렇게 시작되었고, 이로써 국산 병기 개발의 시대를 열게 되었다.



< 전편 - 국방과학연구소(ADD)의 창설 >
< 다음편 - 초기 방위산업 시설 및 공업단지 >



                                           < 연 재 순 서 >


PART 1 방위산업의 역사 / 서우덕 •16

Chapter 1 방위산업이 태동되기까지 •19

1. 1・21사태(김신조사건)•19
2. 미국 푸에블로호 납치사건•21
3.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사건•23
4. 미군 정찰기 격추사건•24
5. 닉슨 독트린과 주한미군 철수•26
6. 자주국방과 방위산업: 불가피한 선택•29


Chapter 2 방위산업의 태동과 자주국방•31

1. 방위산업을 향한 첫발•31
2. 국방과학연구소(ADD)의 창설•35
3. 최초의 방위사업: 번개사업•47
4. 초기 방위산업 시설 및 공업단지•51
5. 방위산업 육성의 밑그림과 제도 구축•55
6. 우리나라 중화학공업과 방위산업•64
7. 율곡사업(‘국방 8개년 계획’)과 기본병기 국산화•81
8. 방산기술의 발전•90
9. 방산기술인력 양성•102
10. 한국방위산업진흥회의 설립•111


Chapter 3 방위산업의 시련과 도전•119

1. 핵개발•119
2. 미사일 개발•127
3. 전두환 정권과 국방과학연구소의 구조조정•141
4. 획득환경과 제도의 변화•144
5. 2차 율곡사업과 한국형 무기체계 개발•146


Chapter 4 방위산업의 안정과 성장•149

1. 3차 율곡사업과 첨단전력 확보•149
2. ‘818 군구조 개편’과 전력・획득조직 개편•151
3. 한국방위산업학회의 설립•153
4. 율곡사업 감사•158
5. 국외도입사업과 무기중개상•164
6. ‘문민정부’와 ‘국민의 정부’의 방위력개선사업제도 개선•168


Chapter 5 방위산업의 경쟁과 도약•178

1. 국방획득제도개선과 방위사업청 신설•178
2. ‘국방개혁 2020’과 전력증강 방향•184
3. ‘국방개혁 307계획’•189
4. 방위산업 신경제성장 동력화•192
5. 업체 주관 개발의 활성화와 글로벌 도약의 시작•915
6. 방위사업의 투명성•198
7. 방위산업은 그래도 꿋꿋하다•201



PART 2 방위산업의 발전과 성과 / 서우덕.장삼열 •202

Chapter 1 방위산업 정책 및 제도의 변천•205

1. 방위산업 발전의 시대 구분•205
2. 역대 정부의 방산 육성정책•209
3. 국방획득조직의 변천•225
4. 국방획득 의사결정 기구의 변천•245
5. 방위사업수행체제의 발전•251
6. 방위산업 보호·육성정책•261
7. 방위산업의 개방 및 경쟁체제화•274


Chapter 2 분야별 방위산업 형성과 발전•283

1. 탄약 업체•283
2. 기동・화력장비 업체•288
3. 함정건조 역사와 함정 업체•296
4. 항공기 생산・정비 업체•308
5. 유도무기・로켓 업체•321
6. 통신장비 업체•327
7. 지휘통제(C4I)체계/전투체계 업체•333
8. 감시정찰 분야 업체•338
9. 화생방 분야 업체•344


Chapter 3 방위산업의 성과•346

1. 국산 명품 무기체계•346
2. 우리나라 방위산업의 현황 및 위상•349
3. 방산수출•356
4. 방위산업의 기술파급 및 산업파급효과•360


Chapter 4 우리 방위산업의 특징과 발전 방향•372

1. 우리 방위산업의 특징•372
2. 방위산업 발전 방향과 전망•377



PART 3 국산 무기체계의 개발 / 신인호 •380

Chapter 1 소화기•383

1. 개인화기•383
2. K3 / K12 / K6 기관총•388
3. 유탄발사기와 소총의 복합화•393
4. 복합형 소총 - 세계 최초 개발•936
5. 특수목적 소총과 권총•399

Chapter 2 화력무기•402

1. 견인포•402
2. 자주포•408
3. 탄약운반장갑차•420
4. 박격포•423
5. 다연장로켓•428

Chapter 3 기동무기•432

1. 전차•432
2. 장갑차•450
3. 차륜형 장갑차•473
4. 상륙돌격장갑차•476

Chapter 4 함정•482
1. 수상함•482

Chapter 5 항공기•513

Chapter 6 유도무기•540

1. 지대지유도무기•540
2. 순항미사일•546
3. 스마트폭탄 KGGB•560
4. 어뢰•562

Chapter 7 방공무기•580

1. 대공포•580
2. 대공유도무기•589

Chapter 8 지휘통제 및 통신•601

1. 통신장비•601
2. 두뇌와 중추신경 C4I•613
3. 데이터링크 - 네트워크 중심 작전환경 구현•166

Chapter 9 무인체계•621

1. 로봇과 무인(無人)•622
2. 병사도 디지털 환경에 연동•628
3. 무인수상정 및 무인잠수정•631
4. 하늘의 로봇, 무인항공기•634
5. 경제성도 높이고 전투효과도 올린다•641

Chapter 10 감시정찰 및 전자전 무기체계•642

1. 전자전 체계 •643
2. 레이더 체계•646
3. 합성개구레이더(SAR) 체계•651
4. 전자광학/적외선(EO/IR) 센서•652
5. 수중감시체계•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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