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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패권의 묘한 부활

미국에겐 더 강력해진 베를린이 반가울 이유 있다



미국 매체 아메리칸 컨서버티브 지는 지난 29일 헝가리에 거주하는 영어교사이자 컬럼리스트인 윌 콜린스의 기고문을 게재했다.

 

그는 기고문에서 점점 균열이 가속화되고 있는 유럽내 경제 강국 독일과 미국의 느슨해진 동맹관계를 지적하며, 유럽연합이라는 거대 기구의 중심축 독일이 막강한 경제력에 기대어 냉전시대부터 존재해온 잠재적 패권 국가의 가능성을 보여주기보다는 자국이익 우선주의라는 세계적 물결과 그 중심축이 더 이상 유럽이 아닌 극동아시아로 옮겨온 이상, 공동의 이익추구를 위해 미국과의 우호관계를 다소 대등한 입장에서 계속해 나갈 것이라는 견해를 밝히고 있다.

 

그와 동시에 유럽연합 전체를 휘두를 만큼 강력해진 독일의 패권은 앞으로도 러시아를 견제하며 유럽연합 소국들의 질서유지에 기여할 것을 예상하며 독일의 성장이 과히 부정적일 필요는 없다는 취지의 언급도 덧붙였다.

 

 

다음은 그의 기고문 전문이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어도 독일이 당장 통일되리라는 바램은 요원해 보였다. 당시의 역사를 생생하게 기억하며 어린 시절 그녀 자신도 경험했던 제2차 세계대전의 기억을 잊지 않고 있던 마가렛 대처는, 대놓고 통일 독일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프랑스 대통령 프랑수아 미테랑은 대처보다도 더 심드렁해하며, “독일통일 저지는 내가 아니어도 소련이 알아서 할 것이다. 그들은 결코 독일이 강해지도록 놔둘 리도 없으며 강력해진 독일을 적으로 둘 일은 더더욱 없기 때문이라고 예측했다.

 

198911, 서독 분더스타그(독일의회)에 발표한 헬무트 콜 당시 서독수상의 조심스러운 통일독일 5개년 계획에는 긴장한 인접국들과 동맹국을 안심시키려는 의도도 일부 존재했다.

 

그러나 역사는 예상을 뛰어넘었고, 급속도로 이루어진 독일 통일은 냉전 이후 가장 상징적인 업적 가운데 하나로 꼽히고 있다. 되돌아보면, 이제 막 통일을 이룬 독일이 유럽 대륙 전체를 또다시 장악하리라는 암울한 예측은 거의 히스테리에 가까웠으며, 이미 지나간 과거에 집착하는 구세대들의 편협한 고정관념이 낳은 산물일 뿐이었다.

 

더 이상 별볼일 없는 독일군의 대비태세에 대한 최근 언론보도들은 독일의 호전성이라는 것이 이제 정말 옛날 얘기일 뿐임을 시사한다. 극동아시아를 향해 옮겨간 세계적 무게중심 역시 유럽 내부의 정치갈등과 함께 이런 인상을 떨치지 못하게 한다.

 

아무도 의식하지 못하는 강대국이 여전히 강대국일까? 미국의 상대적 쇠퇴와 새로운 다극시대에 대한 예측들은 종종 이란과 러시아 같은 그 지역에 위협이 될 만한 국가나 거침없는 성장을 이어가고 있는 중국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나 세계 4대 경제강국(독일)이 서서히 유럽의 명실상부한 리더로서 자국의 존재를 재확인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사람은 거의 없는 듯하다.

 

유럽에서야 독일의 경제적 영향력이 어쩔 수 없는 현실이지만, 과거와 달리 지금은 이러한 영향력이 적극적인 군사 외교 정책으로 전환되지 않고 있다. 영국과 프랑스가 시리아를 폭격할 때, 독일의 기여라고 해 봤자 뜨뜻미지근한 수사적 지지선언에 불과했다. 영국과 프랑스와 달리 독일 정치인들은 분명 값비싼 무기 시스템에 그다지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어떤 경제강국도 실질적인 역내 실력 행사를 피하기 어려우며, 이런 현실이 여전히 유럽 전역에 일정 정도의 불안감을 조성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1990년대 초부터 이루어진 독일인의 투자를 두고 체코인들 사이에 잘 알려진 우스갯소리를 빌리자면: “체코 탈 공산화 전망에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어.” “좋은 소식은 뭐야?” “독일이 온대!” “나쁜 건?” “독일인들이 몰려온대.”

 

경제적 영향력이 결국은 외교적 압박으로 치환될까? 어떤 의미에서 이는 벌써 진행 중이다. 프랑스와 영국이 아직까지는 강대국이라고 우겨댈 근거로 그들의 군사력을 과대포장해서 선전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앙겔라 메르켈이 독단적으로 내린 수 백만의 북아프리카와 중동 이민자 수용 결정은 아사드(시리아)에게 미사일 몇 발 쏘는 것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유럽의 미래에 훨씬 더 심각한 결과를 불러왔다.

 

유럽 대륙의 남반구에서 진행 중인 유로존 통화정책의 파급효과 또한 독일 영향력의 또 다른 산물이다. 과거 재앙적 수준의 하이퍼인플레이션 경험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던 독일은 유럽 중앙은행이 자국의 금융 긴축정책에 따르도록 고집을 부렸고, 이로 인해 스페인, 그리스, 이탈리아의 끔찍한 불황을 훨씬 더 완화시켜줄 수도 있었던 많은 정책들이 아주 효과적으로 배제되었다.

 

역사학자들은 유럽 역사 가운데 지속적인 평화의 시대를 설명할 때, 종종 기구의 역할을 강조한다. 나폴레옹의 마지막 망명 이후 한동안 계속된 안정의 시대는 비엔나 회의에서 활약했던 뛰어난 외교관들 덕택이다. 나토와 서방 동맹국들을 단단히 묶고 있는 기구간 네트워크는 2차 대전 후 독일 보수주의의 영토수복 야욕을 진압하는데 엄청난 공을 세웠다.

 

이렇듯 주요 기구들의 역할이 분명 대단히 중요하긴 하지만, 최근 독일의 고요한 정적에는 그리 대단한 비하인드 스토리가 없다. 참혹했던 세계대전의 기억과 외부 적들의 위협으로 인해 유럽 열강들 간의 경쟁은 지난 두 세대 동안 중단되었다.

 

소련은 이미 오래 전에 사라졌고, 미국은 섣불리 아시아로 중심축을 옮기고 있으며, 2차 대전에 대한 기억은 희미해지고 있다. 이런 상황 하에서 독일 리더십의 부활이 그리 놀랄만한 일인가?

 

물론 독일의 민족감정이 긴 공백기간을 거쳐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하고 있다는 명백한 징후가 존재한다. 그러한 징후 가운데는 월드컵 경기 도중 자국 국기를 열광적으로 흔들며 내보여주는 독일국민들의 새로운 각성 따위의 귀엽고 평범해 보이는 것들도 있다. 하지만, 홀로코스트가 독일의 유구하고 영광스러운 역사 중 먼지 한 톨에 불과하다는 독일 보수파 지도자의 최근 발언 같은, 어쩌면 나중에 커다란 말썽의 소지가 될만한 것도 존재한다.

 

유럽역사에 정통한 학자들이 냉전이 끝나기도 전부터 통일 독일의 위협을 걱정해왔다는 점은 주목받아 마땅하다. 이 중 한 명인 저명한 영국 사학자 타일러(A.J.P. Taylor)는 이렇게 서술했다. “-영 정책이 성공하고 러시아가 동독에서 손을 뗀다면, 결과는 민족해방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독일 패권이 회복될 것이다. 처음엔 경제, 그 다음은 군사적 패권이.”

 

1990년대의 호황기에는 프랑스와 영국의 독일 통일에 대한 염려가 구시대적이며 기우인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어쩌면 대처와 미테랑이 틀렸던 게 아니라, 단지 그들의 예측이 시기상조였을 수도 있는 것이다. 탈냉전이라는 낙관으로 가득했던 흥분이 사라지고, 서구 동맹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이 마당에, 독일이 자국의 경제적 지위에 걸맞는 지정학적 역할을 당연히 요구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이제 다시금 자신만만해진 독일이 나치나 빌헬미네 시대 외교 정책으로의 회귀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독일의 확장주의를 조장할만한 전통적인 요소들은 사라진 지 오래다. 독일 국경 밖의 민족독일인(폴크스도이체Volksdeutsche: 독일 시민권과는 무관한 민족적으로 게르만인)의 대형 공동체들은 2차 대전 이후에 타 인종들과 섞여 없어진 지 오래고, 조국을 위해 동 프러시아와 알사스 로렌 지방을 수복하자는 요구가 독일의 노쇠한 유권자들과 테크노크라트(많은 권력을 행사하는 과학기술분야의 전문가) 지도층에 호소력 있게 전달될 지 몹시 회의적이다.

 

게다가, 그 지역들은 이미 독일 자본에 접근이 용이하고, 유럽연합 체제를 통해 행사되고 있는 독일의 영향력에 고분고분한데 왜 구태여 무지막지한 군사적정치적 압박에 기댈 필요가 있겠는가?

 

오히려 독일 패권의 재림은 점진적이며, 조심스러우며, 은근히 진행될 것이다. 독일의 경제적 영향력은 이미 유럽연합이라는 가면 뒤에 가려져 있으며, 이 영향력은 기존에 존재하던 다자간기관들로 확장될 여지가 충분하다. , 하나 예를 들자면, 독일은 가난한 동유럽 회원국들의 중요한 수입원인 유럽연합 내부 보조금을 불균등하게 많이 충당하고 있다.

 

헝가리와 폴란드는 독일의 이민정책을 목청을 높이며 비판해왔지만, 유럽연합이 중대한 인프라 기금을 중단하기 시작하면 입을 다물 것이다. 물론, 비셰그라드 그룹(체코, 헝가리, 폴란드, 슬로바키아 연합)이 취하고 있는 반 독일주의 입장은 과거 독일의 야욕을 억제하기 위해 양차 대전 사이에 결성된 동유럽 소국들의 연맹인 소협상(the Little Entente)”을 아주 살짝 연상시킨다.

 

유럽 연합은 순수하게 관료주의적 관성을 통해서라도 살아남을 것이 거의 확실해 보이지만, 현재 진행 중인 포퓰리즘의 위험은 범유럽 정체성의 한계를 노출시키고 있다. 대신 우리 미국은 앞으로 지속적으로, 독일의 입맛대로 점차 구체화되어, 자주 미국의 우선순위와 충돌하는 독립적인 "유럽식" 외교정책이 나타나리라고 예상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 독일의 경제적 영향력이 팽창해온 것처럼, 이러한 과정 역시 꽤 오랫동안 진행되어 왔다.

 

이라크 전에 대한 의견충돌과 독일의 도널드 트럼프에 대한 혐오감으로 인한 양국간의 긴장감이야 불 보듯 뻔해 보이지만, 이는 점점 더 벌어지고 있는 양국간 분열의 조짐에 비하면 소소한 균열일 뿐이다. 독일의 줄어드는 나토 후원금에 대한 미국인들의 짜증은 트럼프 취임 이전부터 존재해 왔으며, 이미 기획 중인 노드 스트림 2 파이프라인(독일이 러시아와 체결한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사업)에서부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맞불 작전에 이르기까지 그 결과 빚어진 다양한 갈등들도 마찬가지 예이다.

 

양국의 지도층에 우호적인 관계가 형성된다면 이러한 불화들이 일단락되긴 하겠지만, 냉전 당시 한마음으로 같은 목표를 향해 달려가자던 합심은 회복되지 않을 것이다.

 

유럽의 리더십을 차지하려는 독일의 최근 시도는 이전에 비해 덜 파괴적일 것임이 거의 확실이다. 현 시점의 독일은 유럽연합의 제도적 틀에 둘러싸여 그로 인해 어느 정도까지는 운신의 폭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독일은 현상유지를 뒤집기 위해 더 이상 과격한 태세를 취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오히려, 독일은 이제 더 이상은 유럽중심으로는 돌아가지 않을 세상에 많은 그저 그런 하나의 강대국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미국과의 외교관계에 있어서 독일은 인도나 브라질 같은 나라를 닮아가게 될지도 모르겠다. 드러내놓고 적대적이지는 않으면서, 공통된 정치적 전통에서 생겨난 우호관계에 기대어, 워싱턴의 요구에 노예처럼 충실히 따르지는 않더라도 상호 공동의 이해관계라는 영역에서 기꺼이 협력하는 그런 나라. 독일의 말썽 많던 역사를 되돌아볼 때, 이는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결과는 아닐 것이다.

 


(번역 : 글로벌디펜스뉴스 외신번역기자 이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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