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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정부기관의 투명성, 과도한 것도 문제다

미치 다니엘스 (프루던트 대학 총장, 전 인디애나 주지사)



8월 13일 워싱턴 포스트(WP)는 수년간 공무원으로 일하며 정보 공개 및 투명성 개선을 위해 헌신한 미치 다니엘스 프루던트 대학총장의 칼럼을 소개했다. 

다음은 그 전문이다. 

2013년 발표된 ‘더 써클’이란 미국 소설을 보면 정보공개와 투명성에 집착한 사회가 오히려 디스토피아로 묘사되고 있다. 개인의 프라이버시와 자율은 점점 자취를 감추고 과도한 투명성 경쟁에 뛰어든 공무원들이 몸에 카메라와 마이크를 장착하고 다니는 장면이 나온다. 

대부분 독자들은 소설이니까 나오는 과도한 설정으로 생각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실제 공직(公職)에 종사하고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절대 소설같은 이야기라고 가볍게 취급할 수 없을 것이다. 좋은 것도 과하면 문제가 된다. 하지만 그 시점이 언제인지 아는 것은 어렵다.

특히 사람들에게 미덕으로 여겨지는 일인 경우 과도하다고 판단되는 시점에 멈추기 힘든 이유는 ‘이쯤이면 되겠지’하고 그만두는 순간 포기나 퇴보로 여겨져 비판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소 위험한 발언처럼 들리겠지만, 정부의 투명성도 과하면 문제가 된다는 말을 감히 하고 싶다. 

현재 미국 정부는 지난 50년간 꾸준히 노력한 결과 최고수준의 투명성을 자랑하고 있다. 필자는 2000년대 초반 정부에서 예산관리 업무를 진행한 적이 있다. 당시 연방정부의 모든 계약에 대해 광범위한 민간기관의 검사를 받도록 절차를 개선했다. 그리고 인디애나 주지사로 봉직하던 2003~2005년에는 윤리성 개혁을 단행하고 주(州)정부의 행정 투명성을 현격히 높였다.

하지만 물도 너무 많이 마시면 독이 된다. 운동이 과하면 오히려 건강에 해가 된다. 정부 활동에서 모든 비밀을 없애려고 하다보면 많은 단점도 드러난다. 실제 지나친 개혁이 원치않는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를 목격하기도 했다. 

공무집행에 있어서의 투명성은 매우 중요하며 절실한 문제다. 하지만 그것이 과도할 정도로 자라나서 아예 정부기관을 코마 상태로 몰고 가는 것도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다. 지금 공무원들은 일을 잘하고 못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이렇게 나가면 갑작스레 큰 사고가 생기지나 않을까 우려가 된다. 사무용 컴퓨터를 조달하는 경우만 하더라도 너무 절차가 복잡하고 방대해서 실제 도착할 때가 되면 이미 시대에 뒤떨어진 모델이 되어버리기도 한다.

투명성에 대한 과도한 집착은 정부기관의 기민함을 빼앗고 재능을 발휘하지 못하게 하고 효율성을 저하시키는 등 이미 여러 가지 부작용을 낳고 있다. 이런 분위기라면 정직한 공무원들도 범법자가 될 수 있다. ‘공개회의’의 원칙에 따르면 공무원들은 회의 중에 따로 이야기를 할 수도 없다. 그러니 사적인 이야기를 해야 할 경우에는 복도를 이용하거나 ‘집행부 회의’를 따로 하기도 하지만 이는 공개회의의 원칙에서 용납하지 않는 것들이다.

기록물 공개법도 마찬가지다. 이것이 이메일 시대에 과연 적절한 법인지 모르겠다. 이메일의 첨부 파일뿐 아니라 메일 내용 그 자체가 대화이며 필요시 공개 대상문서가 된다는 걸 사람들은 이제 다 알고 있다.

나는 국공립 대학교 총장들과 전화회담을 할 때도 서로 ‘이메일은 불안하다’라는 의식을 공유하는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이 편하다. 이메일은 아무리 조심스럽게 쓴다 해도 나중에 어떤 일 때문에 신문 1면에 온통 도배가 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현재의 상황에 빗대어 이런 말을 하는 소리도 들었다. ‘공무원들이 전화통화를 할 때 무슨 대화를 하는지 알기 위해서 모든 공공기관의 전화를 도청할 수 있어야 한다. 그들이 도청을 피해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한다면 그 자리에 감시 카메라를 설치해야 한다’.

과도한 신원 조회나 개인정보 공개 때문에 오늘날 많은 훌륭한 인재들이 공직 진출을 꺼리고 있다. 인디애나 주지사로 재직하던 당시, 주의 사법부에 지원하는 인재들의 숫자가 갈수록 줄어드는 한편 기관의 능력이 점점 쇠퇴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안타까운 마음을 가졌던 기억이 있다. 다른 주들처럼 인디애나에서도 법관 후보에 오르면 즉각적이고 철저한 신상공개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뛰어난 인재들일수록 소속 로펌이나 고객들의 눈치를 보며 선뜻 지원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투명성은 타협에 가장 치명적인 방해요소로 작용한다. 많은 사람들이 미덕이라고 믿고 있는 타협에 투명성이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상황은 매우 역설적이다. 

1787년 미국의 헌법제정회의가 비공개로 진행되었고 어떠한 회의록도 허용치 않은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당시 회의장에서는 어떤 제안에 대해 격렬하게 반대하던 사람들도 타협안과 차선에 대한 수용적인 입장을 마음에 숨겨두고 있었으며, 집으로 돌아가서는 어떻게든 비준안을 도출하고 합의에 도달하기위한 준비를 했다.




위의 예는 잘못된 사례를 소개하려는 것이 아니다. 전후 사정 막론하고 ‘투명성’이 지고지순한 가치로 승격되어 버린 오늘날의 상황에서는 좀 더 유연한 상황대처가 너무나 어려워지고 있다는 말을 하기 위한 것이다. 어떤 문제가 불거지면 관련자의 이메일이나 방문자 기록을 그야말로 철저히 털어대려고 하는 언론의 태도에도 특별히 거부감이 생긴다.

지금 우리는 타협이나 협상이 필요한 경우에 대해서만이라도 일정한 기밀유지 및 참가자 재량권을 인정해 주어야 하는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볼 시점에 도달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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